190511.17★ 순국선열의 날단독 기록
을사늑약
외교권을 빼앗겼다. 찬성한 다섯 대신이 을사오적이다. 이 날이 순국선열의 날이 된 이유다.
주권을 넘긴 문서와 그에 맞선 이름들
외교권을 빼앗겼다. 찬성한 다섯 대신이 을사오적이다. 이 날이 순국선열의 날이 된 이유다.
이완용이 내각총리대신으로 서명했다. 을사늑약에서 5년이 걸렸다.
병합조약이 공포되며 대한제국이 소멸했다. 체결 일주일 뒤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동아일보가 실었다.
충칭에서 임시정부의 정규군이 창설됐다.
우리말 사전을 만들던 학자들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했다. 이극로·최현배 등 관련자 33명(구속 29명), 이윤재·한징이 옥사했다.
해방 이후의 국가폭력과 청산의 기록
제헌국회가 친일 청산을 법으로 못 박았다. 2년 5개월 뒤 폐지된다.
한 방송 발언에서 시작된 논란으로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안상호의 행적이 다시 드러났다. 친일인명사전 4,389명에 그의 이름은 없다. 명단이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고, 후손조차 몰랐다는 뜻이다.
연재는 닫히지 않는다. 같은 사건에 새 기록이 붙으면 이 목차에 이어 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