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 신문 둘, 남은 신문 하나 — 일장기 말소, 1936년 8월
1936년 8월, 두 신문이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먼저 지운 것은 조선중앙일보였고, 그 신문은 이듬해 폐간되어 사라졌다. 오늘 우리가 이 일을 부르는 이름에는 사라진 쪽이 없다.
핵심살아남은 신문은 자기 지면에 자기 역사를 계속 적을 수 있었고, 사라진 신문에는 그럴 지면이 없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쪽이 기억을 갖는다.
먹고사는 일이 급했다. 개인의 성공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절이 길었고, 그 시절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제는 다른 것을 할 여력이 생겼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빚을 졌다. 그들이 목숨을 걸어 얻으려던 것은 제 가족의 안전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후손의 나라였다. 그 후손이 지금 우리다.
빚진 마음은 감정으로만 남으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표현되어야 하고, 표현은 기록이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적는 일이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인사다.
사람에게도 조직에도 나라에도 격이 있어야 하고, 멋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그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격은 구호로 오르지 않는다. 기억하는 방식으로 오른다.
"친일파"라는 뭉뚱그린 말 대신 이름·한자·당시 직책·받은 대가를 적는다.
모든 글 끝에 참고 자료를 남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쓴다.
판 사람의 이름만 남기면 절반의 기록이다. 저항한 이름도 함께 적는다.
1936년 8월, 두 신문이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먼저 지운 것은 조선중앙일보였고, 그 신문은 이듬해 폐간되어 사라졌다. 오늘 우리가 이 일을 부르는 이름에는 사라진 쪽이 없다.
핵심살아남은 신문은 자기 지면에 자기 역사를 계속 적을 수 있었고, 사라진 신문에는 그럴 지면이 없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쪽이 기억을 갖는다.
친일인명사전 4,389명에 안상호는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식 입장문을 내고 그 이유를 밝혔다. '보류'였다. 무죄가 아니라 자료가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핵심명단의 빈칸은 두 가지 이유로 생긴다.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거나, 거기까지 손이 닿지 않았거나. 둘은 완전히 다른데 겉으로는 똑같이 비어 있다.
1910년 8월 22일 조약이 조인되고 일주일 뒤에야 공포됐다. 그 사이 76명이 일본식 작위를 받았고 3,645명이 은사금을 받았다. 작위는 명예가 아니라 거래의 영수증이었고, 영수증은 남았다.
핵심이완용과 박제순은 을사오적이자 경술국적이다. 반대로 1905년 을사늑약에 끝까지 반대했던 한규설은 1910년 남작 작위도 거부했다. 한 번의 선택은 우연일 수 있어도 두 번은 아니다.
한 배우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광복절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지 않고도 그 시대의 선택을 판결할 자격이 있습니까.
핵심그의 증조부는 친일인명사전 4,389명에도, 국가 공인 1,006명에도 없습니다. 누가 알았고 몰랐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겠지만, 알 수 없게 놔둔 책임은 우리의 몫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다섯 사람의 찬성으로 넘어갔다. 그날 그 방에 있었던 이름과 직책, 그들이 받은 작위, 그리고 죽음으로 답한 이름들을 함께 기록한다.
핵심다섯 명 전원이 친일인명사전(4,389명)과 국가 공인 명단(1,006명)에 모두 올랐다. 그러나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징역형 이상을 받은 친일파는 전국을 통틀어 10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