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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08.25일장기 말소 사건

지운 신문 둘, 남은 신문 하나 — 일장기 말소, 1936년 8월

2026.08.257 분 분량

핵심살아남은 신문은 자기 지면에 자기 역사를 계속 적을 수 있었고, 사라진 신문에는 그럴 지면이 없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쪽이 기억을 갖는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3위는 남승룡이었다.

시상대에 선 두 사람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있었다. 국적란에는 JAPAN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지운 신문은 동아일보가 아니었다

8월 13일, 조선중앙일보가 조간 4면에 손기정의 사진을 실으면서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웠다. 사장은 여운형, 기자는 유해붕이었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지방판 조간 2면에 같은 일을 했다. 기자 이길용이 조사부의 이상범 화백에게 사진을 흐리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순서는 오래 잘못 알려져 있었다.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채백 교수의 『사라진 일장기의 진실』이 나오면서 조선중앙일보가 먼저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지금도 어느 쪽을 '원조'로 볼 것인지에는 이견이 있다.

8월 25일, 두 번째

8월 13일자는 총독부가 넘어갔다. 그런데 8월 25일, 동아일보가 석간 2판에 다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다.

이번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총독부는 그날로 동아일보의 발매를 중단시키고 관련자들을 연행했다.

대가

신문결과
동아일보8월 29일자부터 무기 정간. 1920년 창간 이래 네 번째 정간이었다. 송진우 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이 사임했다.
조선중앙일보휴간에 들어갔다. 재정난과 내부 갈등이 겹쳐 끝내 속간하지 못했고, 1937년 11월 5일 발행 허가의 효력이 상실되어 폐간했다.

정간 날짜를 다시 본다. 8월 29일. 경술국치로부터 스물여섯 해가 되는 날이었다. 우연이겠지만, 우연이 아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억은 살아남은 쪽을 기억한다

두 신문이 같은 달에 같은 일을 했다. 한쪽은 정간을 당하고 살아남았고, 다른 한쪽은 폐간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일을 부르는 이름은 대체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동아일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살아남은 신문은 자기 지면에 자기 역사를 계속 적을 수 있었고, 사라진 신문에는 그럴 지면이 없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쪽이 기억을 갖는다. 그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다만 그 조건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다르다. 조선중앙일보의 몫은 그 신문이 사라진 뒤에 다른 사람들이 적어야 했고, 실제로 반세기가 넘게 지나 학자들이 적었다.

지운 사람의 그 뒤

이길용은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1989년 그의 이름을 딴 이길용 체육기자상이 제정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17년, 사건으로부터 여든한 해 만에 손기정기념공원에 그의 흉상이 세워졌다.

여운형은 1947년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그 이야기는 다른 날에 적는다.

이름에 대하여

이 일을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 제기가 오래 있었다.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고, 이것은 누군가 결심하고 한 일이다. 의거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기록은 '사건'을 쓴다. 통용되는 이름이기 때문이지 그 이름이 더 정확해서가 아니다. 다만 여기 적어둔다. 이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한 일이다.

사진 한 장에서 깃발 하나를 지우는 데 필요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의 값으로 한 신문은 문을 닫았다.

참고 자료

일장기 말소손기정조선중앙일보동아일보1936
※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근거와 함께 알려주시면 확인 후 본문을 수정하고 수정 사실을 남깁니다.
이 글이 속한 사건 · 1936.08.25 일장기 말소 사건

이 사건에 붙은 기록은 아직 이 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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