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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열풍: 할매니얼 트렌드와 MZ세대의 전통 간식 재발견
SNACK ESSAY

약과 열풍: 할매니얼 트렌드와 MZ세대의 전통 간식 재발견

2025.12.28NEOMNIUM

인트로: 황금빛 유혹, 약과의 귀환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편의점 디저트 코너에 황금빛 전통 과자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댁 제사상에서나 보던 그 익숙한 과자, 약과가 젊은 세대의 SNS 피드를 점령하고 있었다. 2022년, 한국은 그야말로 '약과 열풍'에 휩싸였다.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파장이 너무 컸다. '약케팅'—약과와 티케팅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로, 인기 약과를 구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치열한 클릭 전쟁이 벌어졌다. 단 몇 초 만에 매진되는 약과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하듯 대기했다.

이것은 단순한 '레트로' 열풍을 넘어선 문화적 현상이었다. 할매니얼(Halmaenial)—'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이라는 새로운 세대론적 키워드가 등장했고, 이는 젊은 세대가 할머니 세대의 취향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트렌드를 상징했다. 약과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무엇이 이 오래된 전통 과자를 다시 젊은 세대의 손으로 이끌었을까? 그것은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서적 향수, 건강에 대한 관심, 그리고 SNS 시대의 시각적 매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꿀과 참기름의 황금빛 조화, 입안에서 부서지는 바삭한 식감, 그리고 씹을수록 깊어지는 달콤함. 이 모든 것이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황금빛 약과

역사 속 약과: 왕실에서 민간으로

천년을 이어온 달콤한 유산

약과(藥果). 그 이름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약(藥)'은 꿀을 뜻하고, '과(果)'는 과자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꿀로 만든 과자'라는 뜻이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 이 전통 과자는 유밀과(油蜜果)의 대표격으로,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 술을 넣어 반죽한 뒤 기름에 튀겨 다시 꿀이나 조청에 절여 만든다.

역사 속 약과의 위상은 대단했다. 고려시대에는 약과의 인기가 너무 높아 주재료인 밀, 꿀, 참기름의 품귀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가격이 치솟자 국가에서 약과 제조와 섭취를 금지하는 법령까지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약과가 당시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조선시대에 들어 약과는 제례와 혼례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궁중에서는 정교한 모양의 약과를 만들어 중요한 행사에 올렸고, 이는 상류층의 품격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민간에서도 명절과 제사상에 약과가 오르면서, 이 달콤한 과자는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에 '특별한 날의 음식'으로 각인되었다.

현대로의 여정: 잊혀진 맛의 부활

20세기 중후반, 서양 과자와 다양한 디저트의 유입으로 약과는 점차 잊혀져 갔다. '옛날 과자', '할머니 세대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젊은 세대에게 약과는 낯선 존재가 되어갔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레트로 열풍과 함께 전통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특히 건강한 단맛을 추구하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약과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인공 감미료 대신 꿀과 조청을 사용하고, 참기름으로 튀겨내는 약과는 '건강한 달콤함'을 원하는 현대인의 니즈와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전통 약과 제조

SNS가 만든 현상: 약케팅의 탄생

먹방과 바이럴의 마법

약과 열풍의 시작점을 짚어보면, SNS와 먹방 문화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식문화 전문가들은 유튜브의 '먹방' 콘텐츠가 약과 돌풍의 주요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 아이돌 가수 소희가 디저트로 약과를 먹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관심이 폭발했고, 이후 유튜버들이 다양한 재료와 함께 약과 먹방을 선보이며 열풍을 더욱 키웠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약과 튜닝'이라는 새로운 먹는 방식이었다. 한 유튜버가 '기적의 약과 튜닝'이라는 37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는데, 구입한 약과에 감미료를 발라 전자레인지에 돌려 더 달콤하게 먹는 비법을 소개한 것이다. 이 영상은 한 달 만에 135만 뷰를 넘어섰고, 댓글에서는 각자의 '약과 튜닝 비법'을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약케팅: 티켓팅보다 치열한 약과 구하기

'약케팅'은 '약과'와 '티케팅'의 합성어로, 인기 약과를 구하는 것이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온라인 마켓 플랫폼 아이디어스에서는 약과 관련 제품 판매량이 2021년 619개에서 2022년 935개로 급증했고, 최근 2년간 약과류 매출은 연평균 54% 성장했다.

인기 약과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는 단 몇 초 만에 주문이 마감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희소성은 오히려 약과의 가치를 더욱 높였고, SNS에서는 '약과 구매 성공' 인증 게시물이 넘쳐났다. 약과 구매자의 80% 이상이 2030세대였다는 통계는 이 현상의 중심에 젊은 세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약과 SNS 트렌드

편의점 혁명: 약과의 대중화

GS25, CU, 세븐일레븐의 약과 전쟁

약과 열풍은 곧 편의점 업계로 확산되었다. GS25는 업계 최초로 자체 약과 브랜드 '행운약과'를 론칭했고, 전체 약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24.5% 급증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CU는 압구정로데오의 유명 카페 '이웃집 통통이'와 협업하여 약과 쿠키 2종을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출시 약 3개월 만에 220만 개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세븐일레븐에서도 약과 상품의 2023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0% 증가했다.

편의점들은 단순한 약과 판매를 넘어 다양한 약과 콜라보 제품을 선보였다. 약과 아이스크림, 약과 쿠키, 약과 라떼 등 약과를 활용한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약과의 가능성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약과 + 아이스크림: 대세 조합의 탄생

SNS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조합은 약과와 아이스크림의 만남이었다. 특히 맥도날드 소프트콘에 약과를 얹어 먹는 '맥도약과'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전자레인지에 약과를 10초 정도 돌려 따뜻하게 한 뒤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얹으면, 온도와 식감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약과 크림치즈, 약과 크림라떼 등 다양한 조합이 SNS를 통해 공유되며 약과의 활용도를 높였다. 커피빈에서 선보인 '조청 약과케이크'는 조청과 약과 조각을 넣은 케이크시트 사이에 바닐라 마스카르포네 크림치즈를 발라 만든 것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약과 콜라보 제품

세계가 주목하다: 뉴욕타임즈의 약과

K-디저트의 글로벌 진출

약과 열풍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2023년 9월, 뉴욕타임즈는 푸드 섹션에서 한국의 약과를 "The Amber Gleam of Yakgwa, South Korea's 'It' Cookie"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음식 담당 기자 에릭 김(Eric Kim)은 "시럽에 담근 꿀과자의 가치를 더 잘 보여주는 한국요리는 없을 것"이라며, 약과가 "세대를 연결하고 한국의 전통에 대한 존경심과 낙관주의를 말해준다"고 썼다.

에릭 김은 고려시대부터 즐겨먹던 약과가 유튜브, 틱톡,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환혼(Alchemy of Souls)' 덕분에 한국과 해외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약과를 즐겨 먹는 장면이 글로벌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글로벌 K-푸드 트렌드의 일환

약과의 세계적 인기는 K-푸드 열풍의 연장선에 있다. 김치, 불고기, 비빔밥을 넘어 한국의 전통 디저트까지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약과는 서양의 도넛이나 페이스트리와는 다른 독특한 식감과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꿀의 자연스러운 단맛, 참기름의 고소함, 그리고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식감의 조화는 서양 디저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맛의 영역이었다.

할매니얼 트렌드의 의미

왜 젊은 세대는 할머니 취향에 빠졌나

할매니얼(Halmaenial)은 '할매(할머니의 사투리)'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로, 할머니 세대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및 Z세대를 지칭한다. 약과 열풍은 이 트렌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젊은 세대가 왜 갑자기 할머니 세대의 음식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첫째, 정서적 안정감이다.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에게 전통 음식은 '익숙함'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맛보았던 그 맛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정서적 위안을 준다.

둘째, 건강에 대한 관심이다. 인공 첨가물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꿀과 참기름 같은 자연 재료로 만든 전통 음식이 재조명받고 있다. '헬시플레저' 트렌드와 맞물리며, 약과는 '건강한 달콤함'의 상징이 되었다.

셋째, 개성과 차별화의 욕구다. 모두가 같은 디저트를 먹는 시대에, 전통 간식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개성 표현'이 된다. SNS에서 약과 인증 사진은 '나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속될 트렌드인가

F&B 트렌드 전문가들은 '할매니얼' 트렌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레트로 열풍과 건강을 생각하는 헬시플레저 트렌드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약과뿐만 아니라 수정과, 모나카, 미숫가루, 뻥튀기 등 다른 전통 간식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22년 기준 수정과는 전년 대비 199%, 모나카는 124%, 미숫가루는 74%, 뻥튀기는 46% 판매량이 증가했다.

에필로그: 전통의 재발견

약과 열풍은 단순한 음식 트렌드를 넘어선 문화적 현상이다. 그것은 세대 간의 연결,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리고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과자 하나가 일으킨 파장은 놀라울 정도다. 그것은 할머니 세대의 추억을 소환하고,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의 깊이를 전달한다. 약과는 더 이상 '옛날 과자'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달콤한 다리다.

"세대를 연결하고 한국의 전통에 대한 존경심과 낙관주의를 말해준다." - 에릭 김, 뉴욕타임즈

어쩌면 약과의 진정한 가치는 그 맛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기억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우리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상상한다. 그것이 바로 약과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마법이다.